수도

  다카

언어

  벵골어

면적

  1,467만 3천 ㏊

인구

 168,065,920명

종교

 이슬람교 89% 

사이클론과 홍수 등 국제뉴스를 통해 여행지라기보다는 재해지에 가깝게 생각되었던 방글라데시. 실제로 방글라데시 64개 지역 중 50개 지역이 폭우로 인해 홍수 피해를 입고, 755명의 인명 피해와 백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을 낳았던 기록도 있으니 오로지 틀리기만 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본디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이면에 숨어있기 마련인 법.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인 콕스 바자르, 순다르반스 국립공원의 맹그로브 숲과 벵골호랑이 그리고 잔잔한 어둠이 일상인 성 마틴 섬과 같이 날것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자연과 이천 년을 뛰어넘는 고대 유적, 고스란히 남아 북받치는 감탄을 자아내는 역사까지. 이웃한 다른 여러 나라에선 느끼기 힘든 한적한 평화로움과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가득 찬 방글라데시는 ‘여행자들로 북적거리기 전에 방글라데시를 먼저 여행하라’는 은밀한 조언이 있을 정도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여행할 가치가 있는 나라로 꼽히는 곳이다.
기원전 7세기에 이미 문명이 존재했음이 입증된 고대의 나라, 벵골 지방의 동쪽을 차지하며 이름조차 ‘벵골의 땅’, ‘벵골의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그 문명을 하나 둘 짚으며, 광활하고 신비로운 건축 여행을 떠나보자.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데카에서 랜드마크를 찾으라고 한다면 만장일치로 꼽힐 하나의 건물이 있다. 바로 고대의 신전처럼 신비롭고 장엄한 자태를 자랑하는 데카의 주의사당이다.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 도입을 상징한다고 할 만큼 의미가 깊은 이 건축물은 건축물의 구도자이자, ‘침묵과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이 남긴 유작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칸은 당시 시대의 흐름이었던 국제주의 양식과는 다른 독자적인 행보로, 현대건축의 기틀을 마련하며 현대 건축의 1세대라 불리는 4대 건축가(르 꼬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 로에, 알바 알토)의 그늘에서 벗어나 포스트모던 건축의 선구자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거장의 자리에 우뚝 선 인물이다. 이런 그가 남긴 자기 자신도 보지 못했던 필생의 역작, 20세기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꼽히는 위대한 건축유산이 바로 방글라데시의 주의사당인 것이다.

“건축물에 닿기 전까지 빛은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그의 말처럼 칸은 건축을 통해 빛을 진짜 빛으로 만들며, 동시에 빛으로 건축을 완성시키는 건축가이다. 질서와 원리, 침묵과 빛으로 영감을 얻으며 활동해 온 그는 특히, ‘침묵과 빛’이라는 건축철학 아래, 공간의 구조는 빛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생명력이 있는 자연광의 공간만이 진정한 공간임을 역설했다. 그리고 칸의 모든 건축물이 철저하게 그의 건축철학에 의해 설계되고 건축되었듯, 데카 주의사당 역시 그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육중한 콘크리트의 무게감이 단번에 느껴지는 외관을 자랑하는 이 건물은 인공호수 위에 떠있는 것만 같은 모습으로 엄숙한 기품을 자랑한다. 이러한 기품을 한껏 만끽한 후 들어선 내부는 중앙의 원형공간에 본회의장을 두고, 주변에 마름모꼴이 되도록 부속공간을 배치한 평면 구조로 이 역시 빛과 공간이 상호 연결되어 있어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때 내부의 치열한 공간구성을 이루는 콘크리트 덩어리는 팔각형 구성으로 펼쳐지는데, 각각 사각형, 삼각형, 원형 등 기본적인 도형의 형태와 표면을 드러낸다. 이렇듯 단순한 기하학적 평면과 입면은 명쾌하지만 빈약하지 않고, 논리적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칸의 건축 특징을 살려주고 있다. 빛에 정통한 건축가답게 별도의 창을 내지 않고 공간과 공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틈으로 빛이 들어와 보는 이를 경건함으로 이끈다.

1959년 처음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건립이 결정되고, 칸이 마스터플랜을 완성하여 공사를 시작한 이후로도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매서운 반대여론에 시달렸다. 물론, 파키스탄에서 독립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던 상황인데다, 경제 개발이 한참 뒤쳐진 가난한 나라였으니 당시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간절하지도, 큰 의미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정부는 주의사당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라며 대대적이고도 지속적인 설득을 이어갔고, 1971년 독립전쟁에 휘말려 공사가 전면 중단되는 위기를 극복하며, 마침내 1983년에 이르러서야 완공이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빈곤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행복한 나라, 방글라데시. 이 아이러니한 국가의 중심에 들어선 20세기 건축의 마스터피스, 데카 주의사당은 이제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자부심이자, 자랑스러움이라고 볼 수 있다.

루이스 칸(Louis kahn)

20세기 최고의 현대 건축가이자, 최후의 모더니즘 건축 거장. 사물의 존재 질서를 뛰어넘어 구조에 의해 한정되는 완결적 공간이자, 자연광에 의한 공간 선택으로 이뤄지는 ‘건축의 존재’를 추구한 인물이다. 건축의 본질을 좇은 건축가이기에 건축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건축 그 자체로 진정한 건축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보여줌으로써 ‘건물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 대답하며, ‘건축물의 구도자’로 거듭났다. 거푸집 고정물을 그대로 남겨두는 등, 생산기록을 남겨주는 방식으로 건물의 존재를 확인시킨 그의 건축은 건축 과정을 강조할 것과 구조와 건설 방식에 있어 진솔해야 한다는 사상을 면면히 드러낸다. 특히 그의 건축 철학의 핵심으로 꼽히는 ‘침묵과 빛’은 침묵과 빛의 교차점에서 영감이 시작되며, 이는 존재와 표현이라는 욕망의 바탕임을 역설한다. 즉, ‘침묵과 빛’이라는 그의 건축철학은 의지와 법칙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감을 주는 것들이자, 이미 만들어진 사물들의 척도이며, 예술의 성소이고 그림자의 보고로 정리된다. 예일대 예술 전시장, 펜실베니아대 리처드 의료 연구 연구소, 요나스 소크 연구소,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 킴벨 예술 전시관, 예일 영국 예술 센터, 인도 경영연구소 등 그의 역작들은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을 바래게 하기는커녕 그가 현대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임을 방증하며, 현재까지도 건축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북서부, 인도 국경 근처인 라즈샤히 주의 자말간지에서 서쪽으로 5km를 가다보면 27ac(약 109,265㎡)라는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이 유적이 바로, 히말라야 남부에서 가장 큰 불교 수도원 유적지이자, 방글라데시를 대표하는 파하르푸르 사원 유적지다. 이는 7세기 무렵, 팔라 왕조의 황제 다르마팔라가 조영한 것으로, 출토 명(銘)에 「Mahāvihāra」(마하비하라, 大寺)라고 쓰여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7세기는 인도 내에서 순수 불교가 쇠퇴하는 동시에 탄트라 부디즘(밀교)이 새로운 사상적 조류를 이루어 가던 시기로, 나란다의 비크람 쉴라와 파하르푸르에서 밀교가 찬란히 꽃을 피웠던 시기이다. 이에 대승불교의 영향 아래 있던 이 지역에도 파하르푸르 사원이 건립되었던 것. ‘위대한 사원’을 뜻하는 소마프라 마하비라(대승원) 유적인 이 사원은 12세기까지 지식과 문화의 중심지이자,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와 명성을 과거로 흘려보낸 현재의 파하르푸르 사원은 가운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붉은 벽돌 기초만 남아 있는 상태다.

길이와 너비가 300m인 정사각형 모양으로, 인도 대륙 최대의 정사·승원의 복합건조물인 파하르푸르 사원 유적은 그 구조와 계획이 중부 자바의 찬디 세우와 유사하여 더욱 주목 받고 있는 건축물이다. 특히, 종교적 기능을 적용하여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두꺼운 벽돌로 된 벽으로 둘러싸인 대승원은 각 면의 중앙부에 출입문이 있으며, 안뜰 중앙부에는 2중의 기단 위에 3층으로 세워져 바닥이 십자 모양으로 설계된 대사당이 있다. 이는 탑 4방에 불상이 서로 등을 맞대고 바깥쪽을 향하여 안치되어 있는 4면당의 형식이다. 네 면의 담을 따라서는 북쪽으로 45개, 다른 세 면에는 각각 44개, 총 177개의 승방과 사당, 식당, 주방 등의 터가 산재해 있다. 주당의 경우, 현재 3층 및 2층 일부가 소실되어 온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기단부에 수평으로 장식된 약 2,000장의 점토판에 새겨진 농민, 음악가 무용가 등의 조각으로 당대의 인물과 삶의 형상을 엿볼 수 있다. 사방계단의 십자형 설계로 약 120X105m 사면에는 큰 불상을 모셨는데 현존하지 않는다. 벽돌로 지어진 건물 외벽 역시, 조각이 새겨진 점토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점토판에는 부처와 힌두교의 신들, 다양한 동·식물, 악마의 형상, 그리고 힌두교 신들과 대서사시 《라마야나》, 《마하바라타》의 내용이 묘사되어 이 건물의 종교적 기능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파하르푸르의 간결하고 조화로운 선과 다양한 장식은, 캄보디아와 자바(인도네시아) 불교 건축에까지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탄트라 불교의 몇 안 되는 진귀한 유적지로 그 의미가 큰 곳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신의 형상, 도자기, 동전, 비문, 기타 점토로 만든 작은 물건들이 박물관에 그대로 전시되고 있으며, 라즈샤히의 바렌드라 연구 박물관에도 일부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품고 있던 파하르푸르 그 자체는 학술적 의미나 가치와는 무관한 듯,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초원을 배경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바람은 시원(始原)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풀잎 스치는 소리 외에는 사위가 고요한 파하르푸르 앞에서 그 광활한 초원을 흔들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다 보면, 명징해지는 시야로 흘러가야 하는 것들이 그저 고요히 흘러갈 뿐인 평화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찬디세우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조크자카르타의 동북동에 광대한 구역을 점하는 불교사원 유구이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을 지배하고 있던 사일렌드라 왕조가 대승불교를 국교로 선포한 후 세운 사원으로, 사일렌드라 왕조 시대에 가장 위대한 업적이자, 현재까지도 고대 자바섬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장소로 손꼽히는 유적이다. 본래 이름은 ‘만쥬스리 그리하 사원’으로 지혜와 제불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것이며, 불자들과 힌두교 신자들의 조화를 염원하기 위해 프란바난 힌두 사원에서 1km 거리에 위치한 곳에 세웠다. ‘천(千)’을 의미하는 세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심의 주당을 둘러싸고 셀 수 없이 많은 소사당을 규칙적으로 배치했으나 현재는 무너진 잔해가 많다. 일반적으로 중심당의 사방에 한 개의 소실과 계단을 붙인 십자형 플랜으로, 원래 제존의 상을 만다라 풍으로 정연히 배치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지만 현재는 모두 소실된 상태이다. 식민지 전쟁을 겪으며 많은 조각상들이 강탈되었고, 20세기 초반 시작되었던 보존과 복구 작업은 2006년 자바섬에서 발생한 큰 지진으로 난항을 겪었으나, 집중된 복구 작업으로 근래에는 방문객들의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공존하는 방글라데시에서도 계룡건설은 ‘SASEC Road Connectively Project(WP-01공구) 공사’를 수주,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남아시아지역 간 경제협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남아시아지역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 재원의 방글라데시 정부가 발주한 공사이다. 지역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 육상 및 해상 교통의 연결성을 개선하고, 국경검문소와 항만의 접근성 개선 및 혼잡 완화, 물류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공사로, 방글라데시 다카 북서부 지역의 Vogra Bazar Inersection에서 Kaliakoir Bypass Intersection까지 총길이 18.9km의 도로 보수, 개선, 확포장 및 유지보수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공사는 2015년 12월에 착공하였으며, 공사기간은 유지보수를 포함하여 2024년 12월까지이다.

계룡건설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도로공사를 수주한 데 이어, 러시아 하바롭스키 리슈빌 1·2차, 캄보디아 다운트리 댐 공사, 네팔 UT-1 수력발전 개발사업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의 공사를 진행하며 점차 해외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사업을 연이어 수주함으로써 입찰 노하우를 습득해 향후 발주 사업에서도 더욱 탄탄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가야할 길을 알고, 그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은 느린 듯 보여도 가장 빠른 정도(正道)의 길이다. 정도로 걸어온 것들은 쉽게 무너지는 법이 없다. 그리고 차근차근 영역을 넓히고, 탄탄한 경쟁력을 쌓아가는 정도를 걸어온 계룡 역시, 흔들리지 않는 묵묵한 성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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