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이른 아침부터 계룡건설 본사로 22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바로 계룡장학재단의 도시건축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아침 일찍 떠나는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익힐 수 있는 경험을 코앞에 맞이한 학생들은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뇌과학자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가 함께한 도시건축여행, 그 여행은 과연 어떠했을까?
도시건축여행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학생들이 흥분된 공기를 만끽하는 동안 계룡장학재단 이승찬 이사장은 학생들을 직접 배웅하기 위해 미팅장소에 방문했다. 학생들에게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이승찬 이사장은 “오늘 여행이 여러분들에게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소통하고, 공유하며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금이라도 뭔가를 배워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가장 먼저 도착한 성수동의 복합문화공간 다락 스페이스에서는 여행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조를 나누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진행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여행을 위해 든든하게 점심을 먹은 학생들 앞에 드디어 정재승 교수가 등장했다. 프로그램 <알쓸신잡>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이미 뇌 과학자이자, 카이스트 교수, 세종시 스마트시티 총괄 책임자로서 그의 학문적 궤도를 인정받은 정재승 교수는 신경건축학이라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학문을 통해, 공간이 그 내부의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강의를 진행했다.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공원은 어떤 공원일까? 조사를 해보았더니, 나무 그늘이 지는 벤치가 있는 공원이 가장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공원은 쉬는 공간이라는 것, 그렇다면 공원을 설계할 때 벤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이렇듯 공간이란 그 안에서 머물고, 활동하는 사람을 위해야 하며, 그 설계 역시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건축은 사람으로 완성되는 공간이므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반응하며 행동하는지 탐구해야 한다. 바로 그 학문이 신경건축학인 것이다.
이런 신경건축학의 탐구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공간을 보다 잘 활용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됨으로써 건축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사례로 진행된 정재승 교수의 강의는 일말의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이, 시간을 훌쩍 뛰어넘으며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특강이 끝난 후, 학생들은 정재승 교수와 함께 걸으며 성수연방, 수제화 거리 등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 대표 공간들을 관찰하였다. 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숨겨진 신경건축학적 요소와 공간 구조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학생들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과거 물류창고를 리노베이션하여 이제는 어엿하게 성수동의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게 된 대림창고부터, 골조만 남아있던 1970년대 지어진 공장 건물을 생활 문화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한 ‘성수연방’까지. 가동의 1층과 2층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바닥재, 인테리어 모두가 제각각인 성수연방은 건물 자체의 틀 안에서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줌으로써 낡고 허름한 폐공장이라는 이미지에만 의존하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은 독특한 구조의 내부를 돌아보며 소중한 기억들을 사진에 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성수동
본래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 그러나 산업화 시대의 역군인 소규모 공장들이 서울의 지가를 이기지 못하고 인접한 수도권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이 자리에 엄청난 영화를 누리던 양화점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외환위기에 큰 타격을 입게 되면서, 소위 ‘싸롱화’라고 불리던 고급 수제화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서울역 염천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우리나라의 구두점들은 1967년 금강제화의 이전을 시작으로, 그 배후인 성수동으로 밀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90년대 이후 성수동에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 성수동은 국내 최대의 수제화 산업 지역으로 불린다.
학생들은 성수동 거리를 걸어 마지막으로 코워킹 스페이스인 카우앤독에 도착했다.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을지 모르는 학생들은 카우앤독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높은 천장 아래 펼쳐진 복층 구조의 건물 안에서 자유롭게 앉아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자유자재로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디자인된 다각형의 테이블,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뭇가지를 볼 수 있는 넓고 투명한 창문까지. 정재승 교수가 실제로 신경건축학 학회의 모임을 갖는 장소이기도 한 카우앤독은, 그 날 학생들과 함께 둘러앉아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토론의 장으로 쓰였다. 둥근 모서리의 공간에 반원형으로 둘러앉은 학생들은 둥글게 모여 앉게 된 공간의 특성 탓인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실제로 공간과 거리를 걷고 관찰하며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주고받으며, 질문 또한 적극적으로 이어갔다.
특히 아날로그적이고 복고적인 콘셉트의 카페와 복합 문화 공간이 많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정재승 교수의 답변은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오프라인의 세계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즉각적 만족의 기회를 원하고, 경험과 체험을 위해 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이유 역시, 디지털이 발달할수록 반작용처럼 커지는 결핍을 오프라인에서 메우려고 하는 감정이 생기고, 그 공간이 낯설고, 희한할수록 폭발력 있는 체험감각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전 시민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공간&건축 아이디어’를 주제로 삼삼오오 조별로 모여 의견을 나누고, 나온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창고와 폐가만 남아 슬럼화된 곳을 음악회와 버스킹 등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문화시설 건축, 공실로 사용되는 대덕 컨벤션 타운을 원두시장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 학생들은 새로운 시선과 색다른 방법으로 각각 대전을 새롭게 설계하고, 다양한 건축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전통적으로 구획된 도시가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도록 젊은이들이, 다음 세대가, 도시를 다시 한 번 바라봐주면 좋겠다.”는 정재승 교수의 말을 끝으로 계룡장학재단 도시건축여행은 막을 내렸다.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모든 건축자재 및 소재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과 사람들의 행복 및 삶의 질을 증가시키는 설계를 하기 위해 단지 건축학뿐만 아니라, 정신학, 공간심리학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큰 배움을 얻은 좋은 기회였다. 하나의 열쇠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분명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찾아가는 것으로, 나처럼 그저 막연한 관심이 있던 또 다른 이들에게도 그들 인생 속의 맥락의 열쇠, 아이디어의 씨앗을 찾는 기회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돌아오는 버스 안이 잠시 눈을 붙이거나, 책을 읽거나, 옆자리에 함께한 친구와 오늘 하루를 되새겨보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채워진 것처럼, ‘사람을 이해하는 건축을 실현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이번 도시건축여행은 어떤 학생에게는 자극이, 또 어떤 학생에게는 전환점이, 그리고 또 어떤 학생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