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을좌우한도전정신과창업주의건설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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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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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만조일이 다가오기 전에 방조제를 복구하지 않으면 이 지역 일대의 논이 염화작용으로 수년간 경작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즉각 헬기로 현지에 내려와 피해상황을 살폈고, 육군 참모총장과 2군사령관도 군 투입 결정을 위해 수해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점검 결과는 주민들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끊어진 방조제 밑의 수심이 5m나 되고 방조제도 윗부분의 너비가 2.5m밖에 안되는데다가 하루 두 번 조수가 밀려들어 올 때면 방조제 주변이 바다로 변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이밖에도 어려운 요인이 많아 13일 후인 다음 만조까지는 응급복구가 불가능할 것으로 잠정결론을 내리고, 제방 복구작업은 일단 뒤로 미루고 다른 재산에 대한 피해복구부터 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현지에 갔었던 이인구 명예회장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피해지역 이곳저곳을 세심히 살펴보면서 대책마련에 고심을 했다. 대전으로 돌아온 이명예회장은 곧바로 충남도지사실 문을 두드렸다.

"일체 비용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기회를 주시면 다음 만조 이전에 터진 제방을 막아 놓겠습니다.
설사 실패한다 하더라도 도에서 손해볼 것은 없잖습니까?"

이같은 이명예회장의 직설적 제안에 손수익 충남도지사는 완공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공설운동장 공사를 더 염려했다.

"방조제 공사까지 손대면 공설운동장 공사에는 지장이 없을까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닙니까?"

사진 이명예회장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신있는 어조로 대답하자 도지사는 다시 한번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 계룡건설이 앞장선 가운데 민관군으로 방조제 응급복구반이 편성되었다.
이때 이인구 명예회장은 즉각 이헌구 소장을 지휘관으로 하여 중기 11대와 기사 24명을 현장에 투입, 군사작전에 준하는 24시간 작업시스템을 재가동했다. 여기에 기동성을 발휘하기 위한 몇 가지 노하우를 보태 속전속결로 방조제 공사를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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