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근대화물결의중심에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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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경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기간 경부고속도로 계획'의 의지를 천명한다. 지금의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건설부와 재무부가 뒤를 밀고 육군에서 주도적으로 이 계획을 수립하되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되고 건설부장관, 재무부장관, 한국은행 총재, 육군공병감이 위원이 되는 기획단을 만들고 그 밑에 각 부처에서 인원을 차출, 실무위원회를 구성하라는 지시였다.


이인구 중령은 육군대표의 차석으로 이 실무위원회의 계획반에 동참하여 핵심멤버로서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고속도로의 노선 선정, 기본설계, 건설예산 책정, 건설절차 등 굵직한 사안들을 결정하느라 밤낮으로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힘은 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느낄 수 있었던 나날들이었다. 국회나 원로 정치인들로부터 많은 저항을 받는 가운데서도 4백50억원을 차관으로 들여오고, 시공은 건설회사에 도급을 주고 감독과 교육은 군공병이 주도로 시행한다는 골격이 세워졌다. 이명예회장을 비롯한 실무계획반원들은 갖은 꾸지람과 압력, 수모를 당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 해외차관 문제도 잘 해결되어 기획단계에서의 걸림돌은 더이상 없었다.

그러나 막상 사업을 추진하려다보니 '17개 정도의 건설회사가, 그것도 시공력이 크게 떨어지는 이들이 과연 대공사를 해낼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당시에는 현대적 의미의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20여 종류의 중장비를 갖춘 건설회사는 하나도 없었고, 중장비가 있다 해도 그 장비를 운전할 인적 자원이 절대 부족한데다 시공법을 소화해낼 기술진을 제대로 갖출 수조차 없었던 것이 한국 건설업계의 현주소였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이명예회장에게 막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4천만 달러의 재원을 인가받아 중장비 구매 교섭반장으로서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미 현지감각을 익힌 바 있는 이명예회장은 곧 미국 중기회사들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차관(외상) 판매하겠다는 교섭문서와 판매조건을 문서로 받아냈다.
아울러 이 막대한 중장비의 정비 등 애프터 서비스와 부속 공급계약도 체결했으며, AS반을 가동하여 한국 건설회사들에 대한 장비 운전교육도 실시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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