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근대화물결의중심에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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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장비·물자는 미국이 원조하고 시공은 한국 공병이 맡으며, 한국 건설부는 기본계획과 준공 후 유지보수를 하는 것을 골격으로 수립된 이 사업계획은 곧 케네디 당시 미국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국의 건설부, 육군본부, 미8군, 유솜, 미군사 고문단 등 5개기관이 합동으로 참여한 가운데 '한미합동도로위원회' 라는 기구를 발족시켰다. 이명예회장은 위원회 활동 초기부터 육군을 대표하는 실무 책임자로 일하다가, 후기에는 천안∼대구 프로젝트의 공사 통제관으로 자리를 옮겨 현장지휘에 나선다.


이 사업에서는 재래공법보다 눈에 띄게 예산이 덜 드는 신공법을 사용함으로써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거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엄청난 파급효과까지 거두었다.

첫째, 민간업자의 지원이 전혀 없이 순수 군 병력만으로 눈부시게 공사를 진척시키는 모습을 보여줌으 로써,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전선을 지키는 것과는 또다른 각도에서 군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었고, 국민들의 근로정신을 한껏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둘째, 그 때까지만 해도 포장공사라면 속칭 침투식 마카담 포장이라고 하는, 자갈을 삼태기에 담아 깔고 그 위에 아스팔트 분무기로 뿌리고 롤러로 다지는 식의 전근대적 시공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던 실정에서, 갓 입대한 새파란 군인들이 새로운 장비와 신공법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의 시공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니 대견스러운 일이었다. 한쪽에서는 거대한 크랏셔가 먼지를 뿜으며 쇄석을 양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대한 핫 믹스 플랜트(hot mix plant)가 아스팔트 혼합물을 생산하고, 아스팔트 피니셔가 도로 위를 지나가면 순식간에 말끔한 포장도로가 완성되고 즉시 새 도로로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런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군사시설의 현대화 계획도 이명예회장의 작품 중 하나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군막사는 천막시설이 아니면 흙벽돌 막사가 고작이었다. 그런 기존개념을 허물고 당시로서는 혁신적이라 할 만한 콘크리트 기초에다, 시멘트 블록벽, 목조 트러스에 시멘트 기와지붕 형식으로 된 표준막사를 설계하여 번듯하게 완성시켰다.

몇 년 후의 일이지만 단군 이래의 가장 큰 공사라는 경부고속도로를 우리 손으로 건설한다는 발상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국도포장 사업을 해냈다는 자신감에 힘입었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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